2024년 겨울 결산!
2024.12.24

 

무인양품에 6*4 사이즈 엽서 넣는 파일이 있다. 속지가 아주 많아서 꽉채우면 벽돌이 될 것 같은 그거 누구나 한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난 그 파일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두 개는 인화사진이긴 한데 이제 프박이라고 불리는 그것들을 넣어두고^-^ 나머지 두권은 위 사진이다. 다꾸할 때 쓰는 알파벳, 숫자, 한글 스티커들을 여기에 넣었다. 딱 맞는 사이즈도 아니고 한 포켓에 다섯장씩 넣기도 하지만 나름 만족하면서 쓰고 있다. 저 모든 스티커들이 10개월동안 산 것들이라고 하면 당신은 믿을 수 있습니까,,? 그래도 꽤 자제하고 돈 없어서 못 산 달도 많았다.

 

 

 

아끼는 프박을 잘라서 새 노트에 표꾸를 해줬다 진짜. 실물이 더 더 귀여운데. ㅠㅠ

노트는 썸비에서 나온 양장 라인 노트다. 난 양장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하드커버의 벽돌책이 떠올라서 뭔가 더 으리으리한 느낌을 가지고 있지만 이 친구는 그냥 노출제본의 한달분 다이어리다! 아 이런 거 정말 좋다ㅎㅎ 물론 나는 1일 2다꾸도 하는 날이 좀 있어서 무지의 40페이지가 더 잘 맞았던 것 같긴 한데 그건 노출 제본이 아니니까 불편했어서 ㅠㅠ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노트는 참 만나기 힘든 걸 알기에 이 정도로도 아주 만족하고 쓰고 있다! 사이즈는 아마 호보니치 윅스랑 같았던가 비슷했던가... 일단 무지 에식 슬림보다는 좀 더 슬림하고 길쭉하더라.

 

 

 

2024년에 쓴, 쓰고 있는 다이어리 모두 모아봤다. 올해는 진짜 바빴던 한 달과 응급실 못 가서 미쳐버릴 만큼 아팠던 날들 말고는 정말 매일 다꾸를 했다. 그리고 웬만하면 쓰고 있는 다이어리의 마지막장까지 완벽하게 채워주고 다른 다이어리로 넘어갔다!! 이게 진짜 큰일 한 거다. 나는 빨리 질려하는 타입이어서 늘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 라며 다른 3주 정도만에 다른 걸로 옮겨가곤 했는데 올해는 상반기 내내 한권만 쓰는 인내심을 길렀다!! 육공 다이어리는 다꾸한 속지 넣었을 때 표지가 너무 벌어지지 않는 정도로만 채우고 끝낸다. 그렇게 썸비 블랭크북 2권 쓰고 무지 에식 슬림 노트 2권도 알차게 썼다 ㅎㅎ 저 흰 가죽 다이어리는 에식 하프인데 저건 반 정도 쓰다가 남았다... 인물 다꾸 위주로 했던 건데 쓰다가 취향이 갑자기 바뀌어서ㅋㅋㅋㅋ 그래도 언제든 다시 돌아갈 의사는 충분히 있다..!

 

 

 

 

올해는 어떤 해였나. 일단 상반기에 권고사직 두번 당하면서 정말 괴로워했다. 나라는 인간 자체가 무쓸모한 것 같고 늘 레이스 시작! 하면 한발 딛고 쓰러지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절망스러웠다. 이번 두번으로만 이러는 게 아니고 지난 7년간 계속 이래왔으니까 무기력이 학습되고도 남는다. 혼자 밥벌이 할 궁리를 많이 하고 있다. 무기력해진 것과 상반되게 이렇게 방황하고 평범치 못하게 사는데도 거의 군말없이 나랑 얘기해주고 웃어주는 내 곁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날도 많았다. 크게 보면 별로 이룬 것 없이 잃은 것만 많은 것 같지만 작게 들여다보면 얻은 것도 많은... 소소하게 끝까지 잘 왔다- 하는 느낌의 한 해였다.

 

1-2년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내가 멀쩡한 사람이 되어서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집에서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하면서 돈 적게 벌어도 되니까, 직장생활 안해도 되니까 무리하지 말라고, 아빠는 딸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그거 이상으로 더 바랄 게 없다고...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당연히 나는 그 자리에서 애처럼 엉엉 울었더랜다. 아주 더럽고 무겁고 진득했던 한이 한겹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내 정신과적 증상들이 장기화되면서, 나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나는 밖에서 일할 체질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안정적인 수입이 어려우니까 그리고 아버지는 직장생활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 사람이니까 그 기대감을 채워주고 싶었던 마음도 있다. 나 이렇게 직장도 다닐 정도로 멀쩡해졌다 라고 증명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내 의지대로 나을 수 있는 병도 아닐 뿐더러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심해지기만 하고 있으니... 진짜 나와 보여지고 싶은 나 사이의 간극이 커질수록 고통스러웠고 그 사이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도 난 가족들 앞에서 뻔뻔한 얼굴로 그놈들이 나쁜 거라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하염없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되려 응~ 니들이 그래봤자 나 타격없어~ 갈 곳 많아~ 이런 식으로 나온 듯하다. 하지만 이젠 정말... 정말 지쳐버렸으니까. 나는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버지도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 일이 있었던 것만 해도 올해 헛살았다 라는 말은 전혀 나오지가 않는다. 다행이다. 나는 무려 7년을 계속 실패하면서도 사회 속에 내가 있을 자리를 찾아다녔고 그러기위해 아무런 문제 없는 인간인 척 연기를 해왔다. 그러다보면 보통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이력서 넣은 곳은 몇백군데일까. 면접은 몇백번 봤나. 실제로 입사한 곳은 몇십곳인가. 그런데 난 지금 어디지? 우리집, 내 방, 내 컴퓨터 앞이잖아. 여기가 내 자리인 거다... 시간은 길게 걸렸지만 난 내 자리를 이제 찾았다고 생각한다. 그늘진 방이 내 자리라고 해서 풀죽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무얼 할 수 있을지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요즘엔 새벽마다 일어나서 공부하는 것도 있으니 좀 더노력하면 반드시 전보다는 훨씬 괜찮은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번에 빼빼로를 만들어줬던 친구가 이번에는 파운드케이크를 만들어줬다. 몇달 전 내가 생일선물로 줬던 빵틀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친구에게는 정말 감사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 10년 넘게 같은 동네 살면서 일주일에 세번을 같은 카페에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아무 이유 없이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동네를 쓱 돌기도 하고, 드라이브도 자주 다니고, 마블이 한창 잘나갈 때 n회차도 같이 뛰고, 콘서트도 같이 가고, 농구 직관도 가고, 해외여행도 가고 등등.

 

친한 친구라면 다들 이 정도는 하겠지만 내가 보통 버거운 녀석이 아니기에 정말 감사하다는 것이다. 기본 말 많고 잘 흥분함, 그래서 가끔 정신 못차림, 체력 너무 딸림, 같이 있는데 불안이나 공황 오면 난감함, 너무 힘들면 자정 넘어서 울면서 전화함, 간만에 만나면 요즘 내 병은 어떻고 디스크는 어떻고 tmi 남발함, 요즘 관심사에 대한 tmi도 남발함, 이 모든 걸 묵묵히 들어주는 친구다.

 

요즘엔 돌이켜보니 내가 너무 멋대로 군 기억밖에 없어서 또 tmi 남발해버렸을 때 아 미안하다, 그냥 무시해도 된다 필요 없는 얘기를 너무 길게 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말하니 돌아오는 대답이 이러라고 있는 친구고 말 못할 얘기도 아닌데 뭐 어떠냐- 라고. 그리고 연말이니까 곧 자기 연차때 만나서 밥 먹자고 하는데 괜히 혼자 찡해졌다...

 

 

 

난 새벽 1시~2시에 보통 잠이 든다. 그리고 한시간 반이나 두시간 후에 깬다. 심지어 정신까지 번쩍 깨어버려서 몸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작업을 하든 공부를 하든 뭐라도 하면서 다시 체력을 깎고 잠들어야한다. 근데 그것도 쉽지 않다. 다시 잠드는 건 7시~8시다... 해 뜰 때 자고 또 일어나면 9시~11시 사이 정도. 그러니까 또 잠이 모자라고 피곤해져서 늦은 오후에 쓰러지듯이 잠든다.

 

가족들이 새벽에 깨서 화장실을 가거나 출근 준비를 할 때 늘 내가 깨어있으니까 안 자고 뭐하냐, 왜 밤을 새고 그러냐, 무리하지 마라 이러는데 아냐... 나 자고 일어난 거야ㅎㅎ 라고 할 때마다 얼마나 머쓱한지. 몸이 편하고 피곤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냐고 진짜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들었는데 몸이 편하다고 한두시간 자고 번쩍 일어나는 게 정상인가요,. 네,?

 

나도 내가 하루에 세번을 잔다는 게 진짜 미친 것 같다. 세번 다 합쳐도 7시간이 안된다는 건 진짜 이건 비정상이야. 여성 권장 수면시간은 9시간이라던데... 오늘도 2시 반에 일어나서 지금 아침 6시를 맞이하는 중... 요즘 병원 가서 상담하는 거 정말 알맹이가 없어서 그냥 약만 타오고 싶었는데 또 보고해야할 게 생겼구나... 이러면 또 약이 바뀌고 그럼 또 생활패턴이 바뀌니까 너무 힘든데 아이고 ㅎㅎ 약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는 거 잘 안다 근데 의지로도 해결이 안된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급하게 대여한 몸이어서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모르겠는 그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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